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문단 편집) ==== 전초전 ====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하여 군대를 정비하던 발렌스 황제는 이탈리아 주둔군을 지휘하던 세바스티아누스 장군을 선발대로 파견하여 트라키아 주둔군을 재편성할 것을 지시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약 2,000명 규모의 선발된 부대를 지휘하여 고트족을 습격, 하드리아노폴리스로 접근하던 고트족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고, 프리티게른은 니코폴리스 근교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서방군의 정예부대를 판노니아 일대로 진출시켰으나, 이때 하필이면 라인(레누스) 강 일대에 있었던 알레마니족이 침공을 시도했고, 그라티아누스는 화급히 부대를 소환하여 아르겐타리아(지금의 프랑스 콜마르) 근교에서 알레만니족을 격파했다.('''아르겐타리아 전투''') 그러나 이 때문에 서방 로마 제국의 지원군이 동쪽으로 진군하는데 막대한 차질이 빚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발렌스 황제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세바스티아누스 장군이 승리를 거두고,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알레만니족을 격파했다는 소식을 들은 발렌스 황제가 자기도 이제 공을 세워야겠다면서 교전을 서두른 것이었다. 마르키아노폴리스로 이미 진군했던 발렌스는 8월경 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세바스티아누스의 선발대와 합류했다. 그리고 8월 6일, 정찰을 위해 파견한 수색대가 고트족의 규모가 10,00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첩보를 보내왔다. 당시 고트족의 주둔지는 하드리아노폴리스 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때 리코메르 장군은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전갈을 발렌스에게 전했다. 자신이 달려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동방군의 주요 장군들도 이에 동의했지만, 발렌스 황제는 고트군의 규모가 예상보다 적고, 서전에서 다른 놈들이 이겼으니 이제 나도 승수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빠져 이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개전을 결의했다. 고트족의 실제 규모도 파악하지 못했고, 장거리 행군과 계속된 교전으로 로마군의 병사들이 지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렌스는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이었다. 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는지는 몰라도, 프리티게른은 로마군의 정세를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8월 8일, 프리티게른은 로마 제국에 강화를 제안하고, 적당한 영토를 보장해 준다면 당초 약정했던 협약을 준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미 공명심에 미쳐있었던(...) 발렌스는 이를 단박에 거부해버렸다. 전투에 필요한 시간을 벌면서 제국군을 도발하기 위한 프리티게른의 속셈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그는 결국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